스티브 잡스를 움직인 사람들, 오리지널 맥 개발팀을 만나다!
지난 주 토요일, 쿠퍼티노 시내의 디 앤자 대학교의 플린터 센터에서 개최된 ‘맥 3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설의 최초 맥(Macintosh) 개발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며, 흔히 우리가 말하는 ‘애플빠’, 그것도 ‘미국 오리지널 애플빠’ 들이 어떠한 사람들 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겠다.
맥 30주년 행사가 시작되면서
공교롭게도 이 디 앤자 대학교는, 1984년 1월 24일, 나비 넥타이를 매고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매킨토시를 소개한 장소였다. 행사의 막이 오르게 되자, 그 당시의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소개하는 비디오가 나왔다. 약간은 촌스럽기 하지만 80년대의 유명했던 영화 ‘욕망의 전차’ 의 주제곡이 울러 퍼지면서 참석한 사람들 모두들 그 때를 회상하는지 박수로 부터 시작했다. 아마 그때 부터 스티브 잡스는 ‘시리(Siri)’를 꿈꾸었을지 모른다.
"안녕, 나는 매킨토시야! 이것은 비밀을 누설해도 좋을 만큼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어!"
라고 시작한 이 비디오였다.
이 날 행사는, 스티븐 레비(롤링 스톤지에서 최초 매킨토시를 소개한 저널니스트, 와이어드 잡지사 편집장)가 전체적인 사회를 보았으며, 오리지널 하드웨어 디자인 팀과 연이어, 소프트웨어 개발팀이 나왔다. 먼저 출연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팀들은, 오리지널 맥을 하드웨어 디자인 한 사람들이 나와서 그 당시 맥을 어떻게 하드웨어 디자인을 했는지 설명해주었다.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컴퓨터 박물관에 기증되어 있는 1984년 첫 모델인 매킨토시 128K는 그 당시 다른 PC와 달리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마이크로 칩으로 구성된 8개의 트랜지스터와 더불어, 올-인-원(PC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구성된 제품)으로 구성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과 휴먼 컴퓨터 인터랙션(HCI) 분야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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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컴퓨터 박물관에 전시된 최초 매킨토시 프로토타입[/caption]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매킨토시’는 원래 제품 출시 때 정하는 브랜드명이 아니었다. 바로 Apple I, II 그리고 리사(Lisa)에 이어 뭔가 새롭게 신선한 것이 없나 작명한 코드네임을 ‘매킨토시’로 이름을 부르게 되었고, 스티브잡스가 30년 전, 그날 '매킨토시'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로 최근 'Jobs' 영화에서 보듯이 매킨토시는 1979년 제프 러스킨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또한 지금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개발 언어로 유명한 오브젝티브 C/C++은 맥에서 Smalltalk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나의 추론을 확인시켜 주었다.
현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오늘날, 맥은 사실상 여러분의 일상 속의 한 부분으로 차지하고 있다!”
라고 앤드 필드가 말한 이 말은 그날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을 만큼 맥 30주년 기념 행사에 대미를 장식할 만큼 인상 깊었다. 그 당시 매킨토시는 애플의 메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고 한다.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캠퍼스가 아닌 동떨어진 블랜드3 빌딩이라고 곳에서 해적 깃발을 꽂고, 가끔은 프리즈비 원반을 던지는 놀이를 하거나, 사내 밴드를 만들어 노래부르면서 매우 자유스럽게 매킨토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그날 컴퓨터 박물관 시니어 큐레이터, 댁 시니어스 라는 사람은,
“그것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60-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자유주의) 히피의 문화 융합에서 탄생되었다!”
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매킨토시 개발 팀은 보스턴 컴퓨터 소사이티 커뮤니티에 발표 했던 때를 잊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가 프리젠테이션이 역사상 가장 빛났던 스티브 잡스의 발표가 아니었나 모두 입을 모았다. 왜냐하면, 스티브 잡스는 미래에 IBM에 의해 독점적인 PC 시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면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비유하면서 역설하였고, 이때 부터 직접 맥을 살 대중들을 위해 직접 현장에서 데모를 보여 주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로 발표장은 말로만 하는 발표회가 많았고 직접 리얼 데모 보다는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직접 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맥페인트와 맥워드 프로세서가 동작하는 것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맥에 대한 환상을 그때 부터 대중들에게 심어 주었다. 그 이후, 맥은 전문가 도움없이 미국 학교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 시연회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데모를 보여주었던, 맥페인트를 개발했던 빌 앳킨슨은,
“우리는 단지 돈을 버는 목적으로만 맥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맥을 개발했다.”
라고 말로 이 행사의 정점을 찍었다. 그말이 끝나자 마자, 그 날 관객들은 5분 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몇몇 참석자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까지 표했다.
윈도우와 매킨토시는 영원한 애증(?)의 관계
매킨토시이야 말로, 애플의 흥망성쇠를 잘 말해주는 제품도 없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95와 비슷하여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가 우리는 것을 훔쳐갔다!’ 라고 말할 만큼 서로가 닮았기 때문이다. 아닐까 다를까 사회자 스티븐 레비는, 카피캣이라고 불렸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윈도우 운영체제에 대해 한마디씩 해달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들 중 한명이 이렇게 대답했다.
“2000년 초반 빌게이츠가 과연 애플이 무엇을 했는가? 라고 애플이 한 일이 대해 평가 저하를 했을 때,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는 높은 품질의 제품이 아니었다. 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다. “
라고 하자마자 우뢰와 같은 관중들의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덧붙여,
“우리는 예술품을 만들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의했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보스였나?
회사 생활에서 보스에 대해 이야기가 없다면 앙코없는 진빵이겠지요! 사회자는 스티브 잡스는 어떤 매니저 였는가? 에 대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수많은 인터뷰와 책 속에서 괭장히 ‘명령하달’ 식의 스타일인 줄만 알았는데, 현장에서만 들어보니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그는 동료들의 합리적인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으며, 어떠한 이슈가 생기면 꼼꼼히 혀를 내 두를 만큼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 나갔다고 했다. 또한 그는 코딩 한번 한번도 안 한 엔지니어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이든지 언제나 앞서 나가며 그리는 데 능한 ‘비전너리(Visionary)’ 였다고 최초 매킨토시 개발팀들 모두 동의했다.
그렇지만 첫 매킨토시 프로젝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최초 맥의 타임 쉐어링(Time-Sharing)을 책임 진 패티 캐욘은 그 당시를 떠 오르면서 ‘산고의 고통의 순간이었다.’ 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녀는 첫 버전 맥을 끝냈을 때, “ 그것의 내 배 속에서 나은 진배없는 나의 아기 였어요!” 라고 약간 울음 석힌 말투로 과거를 회상했다. 참고로 그녀는 현재 60대 할머니이다.
끝으로
행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 갈려는 참에 나의 옆자리에 같이 관람하던 노부부는, 장장 1시간 동안 나에게 맥은 자기의 삶 속에서 보물과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맥 때문에 와이프도 만나고 아이들을 키워서 결혼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30년이라는 세월은 한 세대가 태어나 또 다른 부모가 될 수 있는 긴 세월임에 틀림없다. 또한 엄마와 아빠와 함께 손 잡고 온 2시간 내내 캔디크러쉬사가 게임만 했던 5살짜리 꼬마부터, 이제 결혼을 막하여 아기를 업고 온 신혼부부와, 하얀 머리가 아름답게 물들어진 내 옆자리 노부부 까지, 그날 약 2,500명 정도 참석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스티브 잡스’ 아니 ‘애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도 그들의 입으로 또 다른 매킨토시,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자기와 함께 한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필자는 30년 동안 하나의 브랜드명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킨 애플이라는 회사도 놀라웠지만, ‘제2의 애플’ 이라고 불려지는 커뮤니티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훌륭한 팬덤 문화을 가진 애플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기술은 한 회사가 개발할 수 있지만, 문화는 한 회사으로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열정이 온 세상을 변화 시키기 때문이다.
아울러 필자는, 먼 훗날 애플 아이폰과 자웅을 겨누었던 삼성전자 갤럭시를 만들었던 개발팀들이 나와서 그 때의 에피소드를 웃고 울며 들어보고 싶어졌다. 이제 우리는 그런 기술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문화속에서 우리의 창조가 꽃 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