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는 행복도구다”…SK하이닉스 송창록 전무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세미나에 가면 수많은 강연이 있다. 가장 아쉬운 건 몸은 하나인데 듣고 싶은 강연은 동시간에 여러 개다. 내 몸을 가상화하고 컨테이너화해 자유롭게 이곳 저곳으로 동시에 가보고 싶지만 내 육신에 그런 걸 적용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 분신술이라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곳에서 뜻밖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강연자를 만날 때는 행운의 여신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다 . 송창록 SK하이닉스 전무의 ‘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인가(Why Hybrid Cloud?)라는 강연이 그랬다.
잘 나가는 반도체 기업의 CIO(정보총괄임원)가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들어갔다가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은 것 같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와 그 속에서 살아갈 구성원들에 대한 파악과 대응은 테크 세션이라기 보다는 철학 세션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가져왔다.
클라우드 적용기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갑자기 행복과 구성원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구성원들과 앞으로 구성원으로 입사할 이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클라우드는 유일무이한 해법이라는 설명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또한 현실에 충실한 전략이다.
송창록 전무는 “저도 조금 있으면 은퇴합니다. 구성원은 바뀝니다. 지금 존재하는 구성원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의 우리 고객이자 구성원이 될 이들을 위해 일합니다. 클라우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라고 설명했다.
2022년이 되면 엑스세대로 불리던 이들이 임원이 된다. 베이비붐 세대와 다른 이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엑스세대랑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대변되는 밀레니얼 세대도 있다. M15 공장의 평균 연령은 30세 미안인 29세로 젊다. 또 모두 이공계 출신들이다. 그들의 문화, 사용하는 툴을 지원해야 한다. 현재 임원들이 사용하는 툴만 고집할 수 없다. 2027년에는 유튜브 세대가 기업에 입사한다. 동영상에 익숙하고 저작도구도 바뀔 수 있다. 그는 “동영상으로 보고서를 낼지 모른다”고 웃었다.
2037년이나 2039년 되면 책을 읽지 않고 보는 세대가 등장한다. 이 세대는 액자를 보면 손가락으로 키우려고 한다. 터치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은 고장난 것들이다. 이들이 적응한 것들이 모두 클라우드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드는 현재는 물론 미래의 구성원들의 행복을 지원할 필수요소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2019년 신년회에서 “SK가 건강한 공동체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행복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그 척도는 사회적 가치”라고 말한 바 있다. 행복창출 방법론으로 사회적 가치를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글로벌 성과 창출 등 국내외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 전략을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최태원 SK 회장은 구성원의 행복을 최우선가치이자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구성원이 행복해야 최고의 업무효율이 나타나고, 조직 화합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행복을 바탕으로 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그룹의 영속성장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송창록 전무는 “왜 지금 시점에 돈보다 행복을 기업 경영 목적으로 삼았을까요. 특히 구성원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으라고 강조했습니다”라면서 “돈이라는 눈에 보이는 거 말고 행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다. 잠재 고객의 행복보다 우선 구성원들이 행복을 먼저 찾게 됩니다. 회사 목적을 행복으로 바꾸면 구성원의 목적도, 일의 목적도 바뀝니다”라고 말했다.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일을 찾기 전에 우선 구성원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의 구성원은 누구인가. 또 누가 될 것인가. 잠재 고객도 우리의 구성원이다. 구성원의 개념이 확장된다. 이런 고민을 확장하다 보니 클라우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들 툴을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클라우드를 행복 도구로 만들었다. 왜 행복 도구일까. 송창록 전무는 CIO다. 회사와 구성원들 그리고 파트너 구성원들이 업무를 잘 볼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현업 부서의 구성원들은 물론 IT 조직의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업 부서는 CIO 조직에게 시스템 좀 그만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CIO 조직의 존재 이유가 시스템을 만드는 건데 그걸 멈춰 달라고 했다. 그래서 관련 시스템에 대해서 살펴봤다. 상당 부분 시스템들은 리더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구성원과 리더를 분리해보면 리더가 원한 거였다. CIO 조직은 현업 구성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데 힘겨워 했다. 현업 부서는 불행에 빠졌고 자신의 조직 구성원들도 울고 있는 실정이다. 송 CIO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2012년 SK합류하기 전까지 열정 하나로 살아남았고, 2013년부터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고 2016년 하반기부터 클라우드 시장 붐을 타고 급성장했다. 시스템도 많이 만들고 그에 따른 기능들도 덩달아 많이 개발을 했다. 시스템들이 많아지면서 현업 부서가 요구하는 걸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스템들을 분석해야 했다. 심지어 만든 사람 중 30%가 퇴사를 해서 그걸 왜 만들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개발은 둘째치고 운영하는데만 시간도 오래 걸렸다. 현업이 요구하는 건 3개월인데 다 고치고 적용하는데 9개월이 걸렸다.
이런 상황은 반도체 사업에서 치명적이다. 반도체 구매 고객들의 칩셋 라이프타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었다. 새로운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IT가 서포트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그 책임은 자연스럽게 송 CIO에게 돌아온다.
조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 마련에 착수했다. 3가지 중요한 틀을 만들었다. 첫번째가 데이터 레이크다. 데이터를 얻기 위해 모든 시스템에 들어가는 구조를 부수고 하나의 커다란 저장소를 만들었다. 또 이벤트 드리븐 기반으로 데이터를 데이터 레이크에 넣었다. 이런 기반 위에서 앞으로 개발될 앱들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전부 컨테이너 기반의 마이크로서비스를 제공하는 PaaS(Platform as a Service) 플랫폼을 마련했다. 현업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3개월 안에 제공하려면 반드시 필요했다.
반도체 산업은 자동화가 많이 되어 있다. 이런 자동화 장비에서 데이터가 쏟아진다. 시스템들은 흩어져 있다. 데이터를 모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를 가공할 수 있는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개인 구성원들 데스크톱에 GPU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관련 인프라를 한곳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 유리했다. 또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내부 데이터가 국경 밖으로 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까다롭다. 프라이빗 클라우드 환경을 구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빅데이터 분석(AI, ML, DL)과 PaaS는 올 연말 연동된다. 모든 이벤트들은 24시간 철저하게 관리된다. 모바일 환경을 구현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 다양한 AI들이 사람의 손을 타지않고 스스로 개선되면서 관리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모여 인텔리전트 엔터프라이즈로 거듭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구성원 2만 9천명이다. 이들을 모두 빅데이터 분석 엔지니어로 만들고, 마이크로서비스 앱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요한 걸 직접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 구현은 CIO 조직의 몫이다. CIO 조직이 구성원들이 필요한 모든 앱들을 다 만들어줄 수도 없기 때문에 아예 환경 자체를 바꾸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송창록 전무는 “구성원들을 양손잡이 인재로 탈바꿈시키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앱도 스스로 만드는 그런 인재들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SAP의 S/4 HANA는 그래서 SK하이닉스에 무척 중요한 인프라다. 인메모리 기반의 환경으로 개선했다. 반도체 공장은 특성상 무정지 다운타임제로 환경이다. 시스템 구현이나 마이그레이션도 무중단으로 진행해야 했다. 기존 대비 54배 정도 빠른 인프라를 구현했다. 늘어나는 자회사들은 퍼블릭 인프라에 올린 SAP의 클라우드를 쓸 수 있다. 프라이빗과 퍼블릭 클라우드를 오케스트레이션 할 수 있다. 실시간 처리는 당연하다. 반도체 특성상 데이터는 프라이빗 환경에 묶어두고 자회사들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은 퍼블릭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경영진들을 위한 대시보드도 SAP 디지털 보드룸을 적극 활용했다. API 방식으로 간단히 조합해서 필요한, 원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송창록 전무는 “하이닉스는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고 살리는게 구성원인데 어떤 사람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오래가고 좋은 회사가 될지 말입니다. 구성원 한 명 한명이 직접 고급 머신러닝을 다루고 딥러닝을 배워서 스스로 돌릴 수 있도록 지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직 전체가 급격히 변모하는 티핑포인트를 지나 올라갈 플랫폼은 클라우드라는 걸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 먼저 가는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게임입니다. 현재 구성원뿐아니라 미래 다가올 구성원과 고객, 잠재 구성원을 위한 행복도구가 클라우드입니다. 사람을 위한 행복도구를 고민해서 도입하는 게 우리 세대가 준비해줘야 할 마지막 끝맺음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기술이 아니라 소명이 묻어났다. [테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