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손채현 그리너랩 대표 "나무도 주치의가 있다. 디지털로 수목 건강 관리 돕는다"···수목 관리 EMR SaaS로 도전장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eyeball@techsuda.com] 인천 송도로 스타트업을 만나러 다녀왔다. 송도에 있는 기업을 취재한 지는 10년이 넘은 듯 하다. 시스코나 IBM 같은 기업의 새로운 사업 분야를 취재하러 간 적은 있지만 국내 스타트업을 만나러 간 건 처음이다. 시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도착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손채현 그리너랩 대표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 관계자가 재미난 스타트업이 있다고 소개를 해줬다. 사람에게 의사가 있고 반려 동물에게 수의사가 있듯이 나무를 돌 볼 수 있는 '나무주치의'가 있는데 이들을 위한 업무용 앱 트리닥터 플러스를 제공하는 그리너랩(GreenerLab)이 주인공이다.

"나무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황당했다. 농담하는 줄 일았다. 하지만 진짜 나무주치의가 있다. 도시 녹지, 공원, 골프장, 대학 캠퍼스 등 우리 주변의 모든 나무들은 전문가의 관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관리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나무의사'들이다.

그리너랩의 손채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무 관리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 수 있었다. 그리너랩이 뛰어들고 있는 영역은 생소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기도 하다. 국내 수목관리, 스마트팜, 작물보호제 유통 시장만 해도 5,880억 원 규모다.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면 그 규모가 647조 원에 이른다. 현재 그리너랩이 집중하고 있는 국내 수목을 자산으로 관리하는 주요 기관 중 1차 타겟 475개소만 해도 연간 312억 원의 시장이다.

나무의사가 되려면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산림청은 2018년부터 나무의사 국가자격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손 대표는 "이제 공공장소의 수목은 반드시 나무의사의 진단서와 처방전이 있어야 처치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손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2023년 6월부터는 법이 더욱 강화되어 나무병원 소속의 나무의사만이 진단, 처방, 예방, 치료 등의 진료를 할 수 있다. 공공장소 수목을 관리하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다보니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어떤 치료법으로 어떤 약품을 적용했는지 관리가 쉽지 않았다.

그는 "나무에게 농약을 뿌리지만 그게 사람에게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호흡기 질환을 불러오기도 하죠. 어린이와 노인들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련 전문가가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수목 관리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났다. 나무의사의 83.8%가 자격증 취득 전에는 관련 업무 경험이 없는 초보 의사들이다. 게다가 관련 분야가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의 종이 서류 중심으로 문서들을 작성하고 관리하면서 50~60대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이자 그리너랩이 트리닥터플러스를 선보이는 동기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수목 EMR(Electric Medical Record) 시스템을 개발해 나무의사들의 업무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EMR이란 의료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수목 관리에 적용한 것이다.

이런 분야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아버지가 나무의사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원래 다른 일을 하는데 아버지의 일을 옆에서 도와주다가 관련 분야 창업까지 하게 되었다고 쑥스러워했다.

"나무의사분들은 항상 현장에 나가서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병원으로 올 수가 없죠. 현장에서 체크해야 될 사항들도 많아요. 수종, 수목, 나이, 면적, 높이, 소재지 등의 수목 정보부터 햇빛조건, 배수 상태, 토양 종류 같은 생육 환경, 그리고 수종과 피해이름, 사용 악제 품목, 제조사, 사용량 등의 처방까지 다 기록해야 합니다"라고 전하고 "우리 시스템을 사용하면 5~8시간 걸리던 진단과 처방 작성을 20분으로 줄일 수 있어요"라고 필요성과 이를 만들고 있는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이버지가 무척 좋아하시겠다고 했더니 그렇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나무의사는 아니지만 수목치료기술자다. 간호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리너랩의 EMR 시스템은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나무의 상태를 촬영하고, 간단한 입력과 선택만으로 진단과 처방을 완성할 수 있다. 클라우드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PC나 태블릿과도 즉시 연동된다. 이는 현장 작업자들과의 실시간 정보 공유를 가능케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스템이 단순한 기록 도구를 넘어 지능형 조언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수목의 종류를 입력하면 해당 수목과 관련된 병충해가 리스트업 되고, 시기별 병충해 예방 정보도 제공됩니다. 또한 근처 지역의 유행 병충해 정보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죠."

이러한 기능은 초보 나무의사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경험이 부족해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테랑 나무의사들에게도 새로운 병충해나 처치법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지속적인 전문성 향상을 돕는다.

그리너랩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기반의 수목 질병 예측 모델을 개발 중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지원하고 있는 분야기도 하다.

"현재 우리 시스템을 통해 약 22억 개의 데이터 포인트가 생성될 수 있어요. 이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수목 질병의 발생과 확산을 미리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측 모델은 단순히 나무의사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 도시 계획과 환경 정책 수립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어떤 나무를 심으면 병충해에 강한지, 혹은 어떤 나무가 대기 정화에 더 효과적인지 등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손 대표는 이러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목 관리 데이터의 디지털화는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거예요. 녹지 공간의 효율적인 배치, 생태계 보존 전략 수립, 환경 영향 평가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너랩의 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A-IoT로 관리하는 조경시스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나무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때 자동으로 물이나 영양분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너랩의 혁신은 이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68명의 나무의사가 베타 서비스를 이용중이며, 230명이 대기 중이다. 또한 국내 대기업 건설사와 IoT 기업의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투자 논의도 진행중이다.

최근의 기후 변화는 수목 질병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그리너랩은 지속적인 데이터 수집과 AI 모델 업데이트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 시스템은 기후 데이터, 병해와 충해 데이터를 연계해 잠재적인 질병 발생 위험을 예측합니다. AI 분석을 통해 확실한 피해 패턴을 빠르게 감지하고, 즉시 처치 등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그리너랩의 혁신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수목의 가치 평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도 제시하고 있다. "수목의 생태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을 개발 중입니다. 이를 통해 수목 관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많은 아파트 단지나 골프장, 국가지정 공원 등에서 수종 고급화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목의 정확한 가치 평가는 자산 관리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리너랩의 비전은 단순히 회사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수목 관리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 "수목 자산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지구 온난화 감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손 대표의 이 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느껴졌다.

실제로 수목의 건강한 관리는 도시의 대기 질 개선, 열섬 현상 완화, 생물다양성 증진 등 다양한 환경적 이점을 가져온다. 그리너랩의 기술은 이러한 혜택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송도의 오피스를 나서며, 주변의 나무들이 새롭게 보였다. 언뜻 보기에 그저 평범한 가로수처럼 보이는 이 나무들이, 사실은 첨단 기술과 전문가들의 세심한 관리 하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나무들이 우리의 삶의 질과 환경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참, 그는 개발자가 아니다. 디자이너 출신이다. 어떻게 앱을 만들고 개선해 나가는지 궁금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파워플랫폼과 파워앱스를 통해 해당 앱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개발 방식으로는 2-3달 걸리던 걸 이틀 정도만에 만들어 냈다. 관련 분야에 대한 도움을 받고 준비한 덕분에 전문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이 시장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취재를 끝내고 다시 서울 집에 왔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도로와 인도에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 그리고 그걸 밟고 지나간 이들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 왜 하필 은행나무가 이리 많은걸까.

[테크수다 기자 도안구 eyeball@techsu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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