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vs. IBM 법정공방, IT 역사 이정표 되나∙∙∙CIA 클라우드 프로젝트 주목


정보통신(IT) 분야에 세기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공방이 아니다. 자바 라이선스와 관련해 오라클과 구글이 벌이는 법정 다툼도 아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표주자인 아마존과 IT 분야 산증인이자 그 스스로 역사인 IBM간 법정 공방이다.


우선 아마존이 먼저 웃었다.


이번 공방을 관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먼저 진행 사항을 좀 확인해봐야 한다. 미국 공공 IT 전문지 페더럴 컴퓨터 위크(Federal Computer Week)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클라우드 프로젝트를 위해 올 1월 아마존 AWS(Amazon Web Service)와 10년간 6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아마존과 경쟁에서 떨어진 업체가 바로 미국 정부 공공 시장에서 손집고 헤엄치기로 손쉽게 수주하면서 관련 시장을 호령하던 'IBM'이었던 것. IBM은 전통적인 텃밭인 공공 시장에서, 그것도 향후 후폭풍이 거센 클라우드 프로젝트에서 아마존의 입성 자체를 막기 위해 아마존보다 50% 가량 저렴하게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했었다. 시장을 잃는 것보다 잠시 상처를 감내하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IBM 전체 매출에서 미국 공공 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정부 의존도가 높기도 하고 역으로 보며 아주 손쉽게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CIA는 IBM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마존의 손을 들어줬다. 가만히 앉아 있을 IBM이 아니다. IBM은 이 문제를 미국 의회 소속의 회계감사원(GAO :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에 제기했다. GAO는 지난 6월 초 IBM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CIA에 "계약 가격이 잘못 선정되었다"면서 다시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를 선정하라고 권고했다. IBM이 웃고 아마존이 운 권고 사항이었다. 이에 아마존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자신들의 계약은 정당했다는 것. 그 첫 판결이 최근 나왔고 법원은 아마존의 손을 들어줬다.


만면에 미소를 띄던 IBM이 또 한번 좌절의 순간을 맞보게 되었다. IBM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법정 분쟁이 끝난 건 아니지만 이번 공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만든 '서비스'를 공공 기관 그것도 보안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보 기관에서 저가 입찰의 유혹도 뿌리치고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IT 프로젝트는 이를 도입하려는 곳에서 발주를 내고 전문 장비 업체들이나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해당 가격을 제시하고 이를 모두 취합해 특정 IT 서비스 회사들이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고 아예 서비스 회사의 '서비스'를 바로 도입하겠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부 기관에서 네이버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메일 서비스를 '선택'해서 모든 공무원들에게 서비스를 하겠다는 형태다. 기술의 주도권이 IBM이나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HP 같은 전통적인 '벤더'에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인터넷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그 상징적인 사건으로 불릴만하다. 또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공공 고객 입장에서도 구축과 서비스 이용의 선택지를 모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번째는 클라우드와 관련해 '보안'과 '신뢰성'의 문제는 정부 내 기준만 제대로 만들어지면 '클라우드 서비스'도 충분히 공공 시장 안으로 침투가 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CIA가 아마존을 선택하면서 아마존의 웹서비스는 CIA의 방화벽(파이어월) 내부에 구축된다고 알려졌다. 아마존은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해 왔지만 정부나 대기업들의 보안 요구 사항을 적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클라우드는 보안에 취약하다는 말보다는 어떤 보안 체계를 마련하면 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접근 방식이 시장도 키우고 클라우드 확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보안'을 핑계로 클라우드가 기업과 공공 기관 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국내외 벤더나 담당자들 입장에서도 "CIA가 아마존 클라우드를 쓴다"는 말에는 달리 반론을 펼 수는 없을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를 그대로 기업 내부로 들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검증된 '서비스'를 도입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는 클라우드 자체가 무조건 신뢰성이 높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사업자가 제공하느냐에 따라 이 신뢰성은 천차만별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서비스 업체들이 설계한 아키텍쳐가 벤더들이 주도했던 데이터센터 아키텍쳐와 대결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세째 관전포인트는 'IBM의 생존 모델 찾기'이다. IBM은 기술 기업으로 유일하게 100년을 넘게 생존한 기업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IBM은 메인프레임을 개발하면서 승승장구 하기 시작해 너무 잘 나가다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독점 소송을 당했다. 그 시간이 무려 1969년에서 1982년까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IBM의 제품이 안 팔린 건 아니다. 컴퓨터 분야에서 유일한 회사였기 때문에 반독점 소송에 직면해서도 매출은 좋았다. 하지만 메인프레임 시장에 경쟁자가 나타나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로 대변되는 '윈텔' 왕국의 등장하면서 IBM의 왕국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를 구해낸 이가 바로 루 거스너 회장이다. IBM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면서 적자 행진을 거듭하던 IBM을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이런 모델도 경제 위기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공세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메인프레임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빠른 속도로 유닉스 혹은 x86/x64 기반의 리눅스와 윈도우 서버  기반으로 대체되고 있다. 몰락하던 IBM의 소프트웨어를 살린 웹스피어는 라클과 SAP가 각종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그 위세가 예전같지 않다.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로터스 제품군은 구글 앱스나 오피스 365 같은 '서비스' 시장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DB 분야는 오라클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SAP도 하나(HANA)라는 걸출한 제품을 통해 빠른 속도로 고객을 넓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찾아온 금융 위기는 IBM의 안정적인 텃밭이었던 '공공기관'을 드디어 건드리기 시작했다. 앞서 밝힌대로 100년의 IBM의 역사는 고스란히 미국 각 정부 시스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 연방정부와 각 주 정부도 '예산' 문제로 더 이상 과도한 IT 투자를 단행하지 않는다.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그동안 IBM이 제공했던 서비스는 '구축과 운영' 과 관련되었는데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기업과 공공 시장에 접근하면서 이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지 모를 위기에 처해있다.


IBM이 CIA 클라우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아마존 클라우드를 선택하는 사례가 비단 CIA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300여 미국 공공 기관으로 확대될 확율이 높기 때문이다. 또 경쟁자가 아마존만 있는 건 아니라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이 시장에 상당한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구글은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부분으 구글 앱스 기반의 닥스로 교체하도록 접근하면서 공공 기관의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가장 안정적인 시장이면서 경쟁자도 별로 없던 시장을 자칫 하다간 다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IBM의 경영진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 주목된다.


IBM의 생좀 모델 찾기는 국내 IT 서비스 회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모든 걸 구축하고 운영해서 자산으로 떠 안아야 하는 IT 서비스 회사들의 현 수익 모델이 과연 언제까지 유의미할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판결은 이제 시작이다. IBM이 항소한 만큼 다음번 판결에서 뒤집어질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 분야에서 시장을 방어하려는 구세력과 신세력의 격돌이 바로 이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IBM이 이번 판결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이미 IBM 스스로도 부랴부랴 2조원이 넘게 돈을 쓰면서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를 인수했다. 향후 얼마나 더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를 인수할 지 모른다. 공공 시장에서 IT 관련 프로젝트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소송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뭐 항상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말이다.